"진동이 온몸을 덮치고, 바람이 훅 끼쳐 오니 식은땀이 흐르네요."

지난 23일 오후 강원 춘천시 강촌레일파크에서 가상현실(VR) 게임을 즐긴 박수미(26)씨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머리에 VR 기기를 쓴 박씨는 "레일바이크를 발로 굴리면서 VR 게임을 하기는 처음이었다"며 "영상에 맞춰 바람과 진동, 열기, 습기가 오감을 자극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 강촌레일파크 김유정역에서 관광객들이 VR 기기를 착용하고 레일바이크를 즐기고 있다. 지난해 3월 선보인 VR 레일바이크는 김유정역과 강촌역을 잇는 6㎞ 구간 중 470m 구간에서 진행된다. 관광객들은 VR 기기를 착용한 뒤 레일바이크를 타고 이동하며 슈팅 게임 등을 체험하게 된다.

김유정역~강촌역 폐철로(8.5㎞)에서 레일바이크를 운영하는 ㈜강촌레일파크는 지난해 3월 VR레일바이크를 선보였다. 강원도 관광 명소에 VR을 탑재하려고 8억원을 투자했다. 이제 관광객들은 6㎞ 중 마지막 터널 470m 구간에서 VR 슈팅 게임을 체험하게 됐다. 이진호 강촌레일파크 전략기획부 팀장은 "움직이는 VR레일바이크는 세계 최초의 시도"라면서 "페달을 밟는 속도감을 반영해 이미지가 달라져 가만히 앉아 체험하는 기존의 VR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관광·전통놀이·역사에 VR 접목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가상현실·증강현실(AR)이 지역의 관광, 전통문화, 역사 자원과 결합하고 있다. 이런 융복합 콘텐츠는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지역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더 생생하게 만든다. 오직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구현하면 VR, 실사에 그래픽을 입히면 AR이다.

매년 정월대보름, 광주광역시 칠석동 옻돌마을에서 고싸움놀이를 재현하는 축제가 열린다. 고싸움놀이를 구경하는 유일한 때다. 대나무와 볏짚 등으로 고 머리, 몸체, 손잡이, 꼬리로 구성된 고를 만든다. 고 머리는 옷고름처럼 둥그런 모양을 한다. 여기에 오른 줄패장이 "밀어라" "빼라" 구호로 고의 움직임을 통솔한다. 이제 이 고싸움놀이를 VR로 즐기게 됐다.

광주광역시 고싸움놀이 VR 체험관.

지난 18일 광주 남구 칠석동 고싸움놀이 VR 체험관. 눈앞 VR 화면에서 고 머리가 솟구쳤다. 좌석에 고정된 몸이 덩달아 하늘로 치솟았다. 고 머리에 올라타서 고싸움놀이를 지휘하는 줄패장이 되는 순간이다. 삽시간에 고 머리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고 머리가 땅바닥에 '쿵' 부딪힐 때는 좌석에서 흘러나온 육중한 진동이 지르르 몸을 휘감았다.

남구청은 지난달 9일 칠석동 고싸움놀이 테마파크에서 4인승 VR 탑승기 2기를 갖춘 고싸움놀이 VR 체험관을 개관했다. 전국 유일의 고싸움놀이 VR 체험관이다. 사업비는 10억원. 김성재 광주 남구청 문화정책팀장은 "전통 민속놀이 그대로 재현하면 흥미가 떨어질 수 있어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재해석한 VR 이야기를 입혔다"고 말했다.

전쟁의 아픔 역사도 VR과 만난다. 경남 거제시 고현동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선 지난해 11월 VR 체험관이 문을 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등 전쟁 포로 17만3000명을 수용했던 역사적인 곳이다.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는 포로수용소라는 지역 역사 자원을 4인용 VR 게임으로 만들었다. 관광객이 VR 체험으로 남북 분단의 아픔과 냉전 시대의 이념 갈등을 경험해 보라는 취지를 담았다.

지난 2월에는 전북 전주 한국전통문화전당에 VR 체험관이 생겼다. 전주의 전통문화 유산을 VR과 접목했다. 전남 해남 공룡박물관에선 AR을 이용한 게임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마트폰에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박물관 주변을 비추면 공룡 캐릭터가 등장하는 식이다.

◇4년간 특화 콘텐츠 130여개 발굴

지역 문화와 VR·AR 등 첨단 기술이 결합해 탄생한 융·복합 콘텐츠는 2015년부터 전국에서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한콘진)은 2015~2017년 3년 동안 VR·AR을 포함한 지역 특화 콘텐츠 발굴 등에 국비 417억원을 지원했다. 한콘진은 제작에서 상용화, 마케팅까지 지원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발굴한 지역 콘텐츠는 104개에 달한다. VR·AR 융합 콘텐츠는 물론 광주 '두다다쿵 무등산 라이드 액션', 부산 '발 달린 꼬등어―생존시리즈', 제주 '꼬마해녀 몽니 시즌 2' 등 경쟁력 있는 지역 콘텐츠를 발굴했다.

한콘진은 올해 전국 28개 지역 특화 콘텐츠 개발에 100억원을 지원한다. 김영준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각 지역의 독창적인 문화 자원을 누구나 즐기는 다양한 콘텐츠로 개발해 지역 콘텐츠 산업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며 "VR·AR 등의 신기술을 기반으로 그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 콘텐츠를 다양하게 개발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