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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VR·AI로 무대공포증 없애고 폐암도 찾아

이병문,서진우 기자
이병문,서진우 기자
입력 : 
2019-03-20 17:37:11
수정 : 
2019-03-20 19: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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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AI 속속 도입하는 의료계

발표공포 80명 임상 결과
88% 가상현실 치료 효과
공황장애·게임중독도 치료

서울대 AI영상판독시스템
장기에 가려진 폐암 찾아내
환자신원 확인·예약도 척척
사진설명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가상현실 클리닉센터. 가상현실(VR) 기어를 머리와 눈에 장착하고 시계 모양 기어를 손목에 차니 이내 눈앞에 면접관 3명의 모습이 펼쳐졌다. 양옆으로 눈을 돌려보니 다른 구직 경쟁자들이 보인다. "어떤 포부를 갖고 회사에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기자가 "영업을 위해 제품 특징을 열심히 공부한 뒤 바이어들에게 소개할 것"이라고 말하자 곧바로 평가가 나왔다. "귀하가 실제 말한 시간은 23초, 시선 처리가 다소 불안하며 심장박동 수는 정상보다 다소 높은 92bpm을 기록했네요." 기자가 체험한 것은 VR 기술을 활용한 '사회공포증 인지행동치료'였다. 가상현실 클리닉센터에서는 각종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특수 기어장비를 활용해 VR를 체험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정신건강을 치료한다.

이 센터를 운영하는 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미국 VR 장비업체 오큘러스와 삼성전자가 개발한 헤드기어를 환자에게 착용하게 한 뒤 치료한다. 기어 눈 부분에는 기존 휴대폰을 장착하는데 앱을 작동시키면 오큘러스가 제작한 VR 상황 프로그램이 펼쳐져 대중 앞에서 극도로 긴장해 제대로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사회공포증 치료를 돕는다. 사회공포증 등을 지닌 환자들이 많은 청중 앞이나 면접장에 섰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실제로 실험하기 어려운데 VR를 활용하면 이를 쉽게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VR 기술을 활용하면 손쉽게 치료 환경을 100% 통제할 수 있는 데다 상황에 맞춰 치료 단계를 조절하거나 반복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조현병이나 알코올중독 치료는 VR로 다 이뤄내는 데 한계가 있지만 사회공포증 치료는 확실히 효과가 높은 편"이라며 "2017년 8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발표 공포 대상자의 88.1%가 VR 치료법을 통해 불안감을 해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현재 게임중독과 공황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VR 프로그램 개발을 거의 마쳤으며, 이를 올 하반기에 도입할 예정이다.

김 교수처럼 VR를 활용하거나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의료기술이 국내에 속속 도입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1월부터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루닛과 함께 만든 AI 기반 영상 판독 보조시스템 '루닛 인사이트'를 환자 영상 판독에 활용하고 있다. AI가 흉부 엑스선 검사 영상을 보고 폐암이나 폐 전이암으로 의심되는 점을 의사에게 알려주고 의사는 이를 참고해 자칫 놓칠 수 있는 폐암을 조기 진단하도록 하고 있다. 루닛 인사이트는 양질의 영상 데이터와 독자적인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크기가 작거나 갈비뼈와 심장 같은 다른 장기에 가려져 자칫 놓치기 쉬운 폐암 결절도 정확하게 찾아낸다. AI 판독 시스템의 임상 적용을 주도한 구진모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AI가 흉부 영상 판독 보조기능으로 환자 진료에 본격 적용되는 첫 번째 사례"라며 "의료 혁신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가천대길병원이 IBM의 '왓슨 포 온콜로지'를 도입한 데 이어 부산대병원, 건양대병원 등 5곳이 의사처럼 진단하고 치료법을 제시하는 AI닥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응급 상황에서 환자 신분증이 바뀌거나 신원 확인을 못해 엉뚱한 사람을 수술하거나 처치가 늦어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AI로 신원을 확인하는 병원도 나타났다. 한림대의료원은 국내 의료기관 중 처음으로 AI를 활용한 안면인식 기술을 최근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환자를 처음 촬영할 때 눈, 입, 콧구멍, 턱 사이의 각도와 거리, 뼈의 돌출 정도 등 특징을 추출해 데이터로 저장한다. 이후 AI를 활용해 데이터베이스(DB) 내 자료와 비교한 뒤 신원을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한림대의료원은 AI를 활용해 요로계에 생긴 결석인 '요관결석' 제거술 성공률도 예측하고 있다. 병원 측은 요관결석 제거술 중 하나인 체외충격파쇄석술을 받은 환자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환자 나이와 성별, 결석 상태에 따라 수술 성공률을 예측하도록 했다. 병원 연구팀은 "AI를 활용해 초기 검사만으로도 체외충격파쇄석술로 결석 제거가 가능한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며 "체외충격파쇄석술 실패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 낭비를 막는 한편 환자 고통이 길어지는 것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은 내년까지 전문의학 지식 DB를 구축해 이를 학습시켜 음성과 텍스트로 건강관리를 해주는 AI 기반 '챗봇'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다. 의학지식이 아주 해박한 '맞춤 건강관리 매니저'에 가까운 모습이 될 전망이다. 챗봇이 환자 전담 간호사처럼 모든 일상에서 환자 몸 상태와 증상을 세심하게 관리해주는 한편 병원에 가야 할 시점이 되면 알려주고 예약까지 돕도록 할 계획이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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